이곳에는 지석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정착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유서깊은 지역이기도 하다. 부여시대부터 문학산 기슭에 [장자골]이란 부락이 있었고 백제시대에도 햇골부락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을 이루고 정착하여 살기도 하였다. [햇골]이란 조개산지를 뜻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은 해변에서 가까웠던 곳으로 추측되고 있다.
조선시대(숙종 10년)에는 부평 이씨문중의 일부가 낙향하여 [장자골]옆에 정착, 부락을 형성하였으며 그 문중에는 제운 선생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그 분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한때는 "제운리"라고 불리우기도 하였다.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부천군 문학면 학익리였다가 1936년 제 1차 인천부역 확장때 인천부에 편입되어 "학정리"라 하다가 해방후 1946년 학익동이 되었다.